2018年8月2日木曜日

映画タクシー運転手 영화 택시 운전사

タクシー運転手 ~約束は海を超えて~


“先生!今映画館で‘光州事件’を題才にした映画がやっています。映画のタイトルは‘タクシー運転手’です。一緒に見ませんか?”と韓国語の学生に言われた。映画を観ると、その当時が蘇って、辛いようで最初は躊躇した。しかし、歴史の事実から目を逸らしたらいけない気がして学生と一緒に映画館に向かった。
この映画は、1980年5月の光州を取材したドイツの記者ユルゲン・ヒンツペーター(ピ―ター)と彼を乗せたタクシー運転手キム・サボク氏(映画の中ではマンソプ)この2人の視点から見た‘クァンジュ(光州 광주)民主化運動’の実話を基に作られた。実在の人物であるこの二人と光州で出会った人々は、危険な状況にもかかわらず、最後まで自分たちの信念を貫き、良心や常識、そして、厳しい状況の中での決断、勇気がスクリーンに描き出された。当時ユルゲン・ヒンツペーターは光州の状況を聞いて何の迷いもなく、光州に取材に行った。そして偶然にも彼に同行することとなった平凡なタクシー運転手が共に行動する中で彼の目に映った時代の姿、彼の心が大きく揺さぶられる模様、辛い選択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心の葛藤が映画の中では描かれており、その他に普通の人々の小さな決断と勇気、近くで見ていなければ知り得ない事柄がよく表現されていた。
1980年5月全実権を掌握した全斗煥(チョン・ドゥハァン)司令官は民主化の動きを押さえ込むため戒厳令を拡大した。光州のデモは軍隊の棍棒と実弾で押さえ込まれた。重く、胸が痛い歴史の一部分なので観るのが辛かったし実際に自分が当時の光州を体験したので、映画を観ながら韓国現代史の悲劇に涙が出た。しかし、80年代の街並みと懐かしい全羅道方言、そして人々の情に心が温かくなって、時々笑いも起こった。平凡な一人の市民の葛藤と選択、喜怒哀楽を自然に表現したソン・ガンホさんの名演技。言語を越えて、作品の真心を読み解いたドイツのベテラン俳優トマス・クレチマン。
私は1980年の当時、高校生だった。その年の春から大学では連日デモが続いていた。5月18日、学校に行くと、今光州市内に軍人たちが入って来て、人々を連行したり殺したりしているという恐ろしい言葉が飛び回っていた。その翌日から学校は無期限休学に入った。その時テレビに全国放送は流れず、戒厳ニュースだけ放映された。全羅南道は外部と遮断されて、孤立した状態であった。犠牲者や負傷者を目撃したという話を伝え聞きながら、恐ろしさと不安に震えた。5月27日に「光州事態」(1995年に“5・18光州民主化運動”に名称が変わる)は幕を閉じた。
ヒンツペーターの努力は、韓国の厳しい言論統制の中で知られていなかったていなかった光州の姿が、全世界に知られるようになるきっかけになった。光州の真実を生き生きと映し出した彼の映像は、1980年5月22日、ドイツ第1公営放送の夕方8時のニュースと「岐路に立つ大韓民国」というドキュメンタリーで使われ、ドイツはもちろん、全世界に放送された。永遠に歴史の中で埋葬されそうだった明白な真実が、外国の記者を通じて世に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感謝する心を禁じる道はない。
たくさんの日本の方々も‘5・18民主化運動’に大きな関心を示してくれた。
光州事件は、韓国現代史で民主化を成し遂げていく過程から発生した最も悲劇的な事件と言える。今の韓国が民主主義になるまで軍部独裁に抵抗した光州市民と全羅道民の犠牲を排除することはできない。当時亡くなった方々のためにも韓国の民主主義が根強く続くことを望む。

택시 운전사~ 약속은 바다를 건너서~


“선생님! 지금 영화관에서 ‘광주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를 하고 있어요.영화 제목은 ‘택시 운전사’예요. 같이 안 보실래요? ”라고 한국어 학생이 말했다. 영화를 보면, 그 당시가 떠올라 괴로울 것 같아서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역사의 사실로부터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학생하고 함께영화관으로 향했다.
이 영화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취재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피터)
와 그를 태운 택시 운전사 김사복씨. (영화에서는 만섭) 이 두사람의 시점에서 본「광주(光州) 민주화 운동」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재 인물인 이 두 사람과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하고, 양심과 상식,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의 결단,용기가 스크린에 묘사되어 나왔다. 당시 위르겐 페터는 광주 상황을 듣고 , 어떤 망설임도 없이 광주에 취재하러 갔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와 동행하게 된 평범한 운전사가 함께 행동하는 중에 그의 눈에 비춰진 시대의 모습, 그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상태, 괴로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의 갈등이 영화 안에서 그려져 있었고, 그외에 보통 사람들의 작은 결단과 용기, 가까이에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1980년 5월 전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사령관은 민주화의 움직임을 억제시키려고  계엄령을 확대했다. 광주의 데모는 군대의 곤봉과 실탄으로 억눌러졌다.무겁고, 가슴아픈 역사의 일부분이어서 보는 게 괴로웠고, 실제로 내가 당시의 광주를 체험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80년대의 거리 풍경과 정다운 전라도 사투리, 그리고 사람들의 정에 마음이 따뜻해졌고, 가끔씩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의 갈등과 선택,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송강호 씨의 명연기. 언어를 넘어서 작품의 진심을 읽고 이해한 독일의 베테랑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나는 198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그해 봄부터 대학에서는 연일 데모가 계속되었다.
5월 18일 학교에 가니까 지금 시내에 군인들이 들어와서 사람들을 연행하고, 죽이거나 한다고 하는  끔찍한 말들이돌아다녔다. 그다음 날부터 무기한 휴학에 들어갔다.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전국 방송은 나오지 않고, 계엄뉴스만 방영했다. 전라남도는 외부와 차단되고, 고립상태였다. 희생자나 부상자를 목격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다.5월 27일에 광주 사태 (1995년에 5 18 광주 민주화운동 으로 명칭이 바뀜) 는 막을 내렸다. 힌츠 페터의 노력은 한국의 엄격한 언론통제 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광주의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광주의 진실을 생생하게 촬영한 영상은 1980년 5월 22일 독일제1 국영방송의 저녁 8시 뉴스와 「기로에 선 대한민국」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쓰여졌고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뻔한 명백한 진실이 외국 기자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많은 일본 분들도 5 18 민주화 운동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광주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를 이뤄내는 과정 중에 발생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 민주주의가 되기 까지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광주 시민과 전라도민의 희생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한국 민주주의가 뿌리깊게 이어지길 바란다.